- 조선 대표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 일가 묘소 수호하던 ‘분암’의 역사적 변천사 간직
- 불교적 인법당 구조와 영남 특유의 ‘튼ㅁ자형’ 배치 결합된 독창적 건축미
- 30일간 의견 수렴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 최종 지정 예정

조선 시대 영남 사림의 거두이자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 일가의 묘소를 지키던 불교식 암자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교식 제사 공간으로 변모해 간 역사적 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건축 유산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경상북도 포항시에 소재한 전통 건축물인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浦項 驪江李氏 達田齋舍)」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승려가 지키던 ‘분암’에서 유교 문중의 구심점 ‘재사’로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는 회재 이언적과 그 일가의 묘소를 관리하고 시향(문중 제사)을 지내기 위해 조성된 건축물이다. 이 건물의 가장 독보적인 가치는 조선 후기 사족 가문이 묘역을 관리하던 방식의 역사적 변천사를 온몸으로 증명한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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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불교식 분암(墳庵): 초기에는 승려들이 상주하며 묘역을 지키고 죽은 조상의 명복을 빌던 작은 암자 형태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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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식 재사(齋舍)로의 전환: 17세기 중엽 이후 조선 사회에 성리학적 종법 질서가 확고히 자리 잡고 문중의 결속력이 강화되면서, 이곳은 점차 불교적 색채를 벗고 문중 중심의 유교적 재사로 기능이 확대·정착되었다. 1754년에는 누각인 옥성루와 제사 준비 및 숙소로 쓰이는 양익실, 제사용 곡식 창고인 고사(庫舍) 등을 대대적으로 증축하며 현재와 같은 웅장한 재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 같은 드라마틱한 변천 과정은 문중이 소장한 「달전암기(達田庵記)」와 「달전재사 상량문」 등의 명확한 기록을 통해 창건 동기부터 관리 실태까지 완벽하게 증명되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불상 모시던 방과 영남 ‘튼ㅁ자형’ 구조의 기묘한 공존
건축 구조적 측면에서도 달전재사는 조선 후기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훌륭한 표본이다. 건물은 경북 북부 지역 재사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인 ‘튼ㅁ자형’ 배치(ㄷ자형과 일자형 등이 결합해 모서리가 터진 ㅁ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처음 분암으로 조성될 당시의 건축 기법이 곳곳에 그대로 박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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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법당 구조와 널반자 천장: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함께 모셨던 불교식 ‘인법당’ 구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정침(중심 건물) 천장은 가공한 나무 판재로 깔끔하게 마감한 ‘널반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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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의 계승: 기둥머리에 새 날개 모양의 장식을 이중으로 얹어 지붕 하중을 받치는 ‘이익공(二翼工) 공포’ 형식이 적용되었는데, 흥미롭게도 1754년 유교식 공간으로 확충하며 증축한 옥성루에도 동일한 이익공 양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이는 유교 건축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초기 건축의 미학적 통일성을 유지하려 했던 장인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묘소·비석·토지가 하나로 묶인 조선 묘제 문화의 종합판
달전재사는 단순히 건축물 한 채에 그치지 않고, 후손들이 조상을 모시기 위해 조성한 공간적 인프라가 완벽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묘소와 더불어 1586년에 건립된 신도비(인물의 생애를 기리는 비석), 재사 건물, 그리고 이 모든 시설의 유지 및 제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마련된 토지인 ‘묘위토(墓位土)’가 유기적으로 묶여 보존되어 있다.
무엇보다 여강이씨 문중에 의해 오늘날까지도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유한 묘제와 전통 제례 의례가 끊기지 않고 실생활에서 그대로 전승·계승되고 있다는 점이 문화재 지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포항 여강이씨 달전재사는 영남 지역 재사 건축의 독특한 평면 구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불교식 묘소 수호 사찰이 유교식 문중 재사로 정착해 가는 역사적 실증 자료로서 가치가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지정을 예고한 달전재사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아울러 향후 포항시 등 지자체와 적극 협력해 원형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한편, 지역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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